다낭 바나힐 유래,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골든브릿지까지 | 다낭픽
프랑스가 다낭 산꼭대기에 세운 피서지, 바나힐의 시작
다낭 바나힐 유래는 1900년대 초 프랑스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베트남 중부의 무더운 열대 기후를 피하기 위해
쯔엉선 산맥 해발 1,500m 지점에 휴양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곳이 지금의 바나힐스(Ba Na Hills)가 된 출발점이다.
바나힐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는가
바나힐의 명칭은 이 지역에 거주하던 소수민족 바나르(Bahnar)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산 곳곳에 자생하던 바나나 나무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프랑스 식민 정부는 이 일대를 “Station climatique de Ba Na”라 불렀으며,
1919년경부터 도로를 닦고 빌라와 호텔을 세우기 시작했다.
해발이 높아 평지보다 기온이 8~10도 낮고,
하루 안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후 변화가 뚜렷하며,
프랑스인들에게는 더위를 피해 와인을 마시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피서지였다.
1920~30년대에는 약 200여 채의 빌라가 들어서며 소규모 유럽풍 마을이 형성되었고,
다낭에서 산꼭대기까지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식민지 상류층의 주말 여행 루트가 되었다.
쇠퇴와 재탄생, 썬월드 바나힐스
1945년 베트남 독립 이후 프랑스인들이 떠나면서 바나힐의 건축물 대부분은 방치되었다.
전쟁과 세월을 거치며 폐허가 된 이 산 위의 피서지는 수십 년간 잊혀졌고,
2007년 베트남 썬그룹(Sun Group)이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200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논스톱 케이블카(5,801m)가 개통되며
바나힐은 본격적인 관광 리조트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썬월드 바나힐스(Sun World Ba Na Hills)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이곳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건축 양식을 재현한 프렌치 빌리지가 들어섰고,
실내 놀이공원 판타지 파크, 왁스 뮤지엄, 르자르댕 다무르 정원 등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보기 어려운 규모로 확장되었다.
골든브릿지, 바나힐 역사를 세계에 알린 순간
2018년 개장한 골든브릿지(Cau Vang)는 바나힐스의 인지도를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상징물이다.
해발 1,414m 지점에 놓인 이 다리는 거대한 두 손이 떠받치는 형태로 설계되었고,
개장 직후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낭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150m 길이의 보행 전용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맥과 구름 풍경은
직접 서 보지 않으면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 규모감이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바나힐에 프랑스풍 건물이 많은 이유는?
A. 1900년대 초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이곳에 피서용 휴양지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프렌치 빌리지는 당시 건축 양식을 기반으로 썬그룹이 재현한 것이며, 식민지 시절 건물 일부도 복원되어 있다.
Q. 바나힐 케이블카는 왜 유명한가?
A. 2009년 개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논스톱 케이블카(5,801m)로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해발 차이 약 1,300m를 약 20분 만에 오르며, 케이블카 안에서 내려다보이는 열대 우림 풍경이 바나힐 관광의 시작점이다.
마무리
다낭 바나힐 유래를 알고 가면 프렌치 빌리지의 건물 하나, 골든브릿지의 거대한 손 하나가 달리 보이고,
단순한 테마파크 방문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행이 된다.
다낭픽에서 다낭 여행 정보를 확인하고 일정을 짜면 현지에서의 시간이 훨씬 알차게 채워진다.
